오늘따라 장대비가 아침부터 세상을 적신다.
주말아침…언제나 그렇듯, 게으른 아침을 맞이한다.
이불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남은 힘을 다해 눈꺼풀을 올리고선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다.
10시쯤이었나…
점심이나 같이 먹자는 서차장님의 말씀이 생각나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번 뵐까 싶은 마음으로 핸드폰을 든다.
“여보세요? 차장님..종채입니다….언제쯤 갈까요?”
“비도 오는데 그냥 쉬어… 다음에 한번 보자…”
“비가와요?”
그럼 다음에 들리겠노라 어영부영 인사를 마치고 베란다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리다. 어제까지만 해도 덥기까지 하던 5월의 날씨.. 그 빗줄기 치곤 참으로 짖궂다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날씨야 어떻든 지친 날 속에 달콤한 휴식으로 찾아온 토요일 아침…나름대로 상쾌한 마음으로
창가를 향했다.
그런데…
베란다를 열어 바라본 회색빛 세상에서 웬지모를 스잔함이 스치고 지나가는 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함께 점심을 먹고 바래다 주는 길… 오랜만에 만난 터일까?
괜히 영화 한 프로를 제안했다. 몇 번 망설이다가 그러자고 한다.
다빈치 코드를 예약하고, 몇가지 간식거릴 준비해서 영화를 보고 있다.
10여분쯤 지났을까?
핸드폰 진동이 허벅지를 간지럽힌다. 어머니다.
사소한 문제로 갈등도 있었고, 간혹 오는 전화라 아무런 의심없이… 다만 영화관이라 조금은 작은 목소리를 전화를 받는다.
“조금 있다 전화드릴께요…”
“급하다. 빨리 전화해라… 할머니가 이상하시다.”
반신반의…
괜히 아침부터 오던 장대비가 마음에 걸린다.
사람들이 앉아있는 통로의 틈 바구니를 지나 비상구 출입문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위독하시다. 조심해서 빨리 내려와라…”
눈앞이 깜깜하다. 한순간 영화처럼 할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정신을 차렸다. 제발 내려가실때까진 살아계시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왔다.
바래다 주고 집으로 오는 길, 마음이 급하다.
냉정해지자… 차분해지자… 호흡을 가다듬고,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을 불러주는 데, 동생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할머니 방금 돌아가셨단다.”
믿기지 않는다. 믿을 수도 없다.
그냥 그렇게 동생을 태우고, 잠실로 가서, 고모를 태우고…
3달이라는 시간동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셨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태연하게
의젓하게…
어쩌면 염을 하고 입관을 하기전까지도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할머니가 돌아가신지도 많은 시간이 많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일이기에 당연한 것이겠지…
대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쉬지도 않고 나를 따라 같이 대구로 내려오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 했을 때,
큰아버지와 아버지…어머니는 벌써, 상복을 걸치고(입관전이라 옆으로 걸쳐입은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영정사진….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다. 믿을 수가 없다.
이미 석달여 말씀을 놓으시고, 당신이 이제 곧 가노라고 말없이 사인을 주신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눈앞에 영정사진은 그냥 사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만을 바래보지만….
현실은 오히려 나에게 냉정해 지라고 충고한다.
첫날이라 조용하게 큰 문상객도 없던 터였지만, 그져 할머니 눈 감는 모습을 못 찾아뵌 못난 손자는
영정사진 앞으로 피어오르는 향 연기가 공중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이제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밀려나가자, 울컥한 마음은 아무리 애를 써도
감출 수 가 없다….
‘할머니……….’
조용히 불러 봤다. 차라리 거친숨이라도 몰아치신다면 이렇게 가슴이 아프진 않을 텐데…
3개월째 꼼작도 않고 누워서 호수로 음식을 받아들이고 계실때,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이제는 가실때가 된 거라고 나름대로 잘 가시는 거라고 믿고 또 머지않은 시간에 그렇게
되는 것이 맞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쩌면 큰 불효를 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에 사무친다.
어릴쩍-7살였나?정확하진 않다.- 할머니 손을 잡고 앞산공원 놀이동산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회전목마를 태워달라는 나의 생때에 지갑도 없이 산책삼아 나오셨던 할머니는 무척이나 난처해 하셨었다.
어린나이의 그때 그런 모습들이 생각나는 걸 보면 그때 할머니 마음을 다 알았으면서도,
왜 였을까… 동생을 업은 할머니 손을 뿌리치고 나 혼자 집으로 내려와 버렸다.
핸드폰, 삐삐는 커녕 주황색 공중전화도 잘 없던 시절…
할머니는 동생을 업고 해가 져버린 공원여기저기를 찾아 헤매다가 밤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셨다.
얼마나 미우셨을까…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할머니한테 얼마나 몹쓸행동을 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손자를 사랑하시는 할머니의 사랑은 내 가슴속에 너무나 깊이 남아있다.
국민학교 2학년때 당번이어서 태어나서 처음 도시락을 싸는 날이 있었다.
한쪽이 시커멓케 탄 계란말이를 반찬으로 해주신날
이제는 장성한 못난 손자는 바보처럼 이제서야 할머니가 너무 그립다.
계실때 몰랐던 그 정을 이제서야 하나하나 생각해 내며 후회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 한번 못해드리고 그냥 이렇게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는 내 마음이
어제처럼 오늘 밤에도 눈물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