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경험이 있을텐데, 실체적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그로인한 아픔만큼이나 스스로 약해졌거나 그렇게 되어가고 있음에 대한 심리적 압박으로 자승자박하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그 반대급부로 이를 이겨내고야 말리라는 과의지상태로 ‘할수있다!’는 식의 유격대원 코스프레를 할 때가 있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아마 폐암 수술을 하고 4~5일정도 된 날에 점심시간을 막 지난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도 난 수술 후 병원에서의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병동의 복도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천천히 걸으며 몇 바퀴를 돌고 다시 병실에 돌아오는 나만의 재활운동을 반복했다.
아직 몸이 온전치 못한데다 몸에 딸린 부속물이 많아서 한걸음 때기도 쉽지 않은편이었고 이런 이유로 운동하는 동안에도 아내는 계속 내 옆을 지키며 함께 걸었다.
운동을 마치고나서 나 때문에 점심식사도 못한 아내를 재촉해 병원 아케이드에서 뭐라도 먹고 오라며 내려 보내고 나는 다시 침상에 올라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병원에서 지급받은 호흡재활 보조기구를 입에 물고 그 안에 있는 흰공을 공중으로 띄우기 위해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가며 크게 쉬었고 그 때 마다 수술부위에 꽃혀 있는 관에서는 붉은색 혈액과 노란색 체액같은 것이 뒤섞인 흉수가 나의 호흡에 맞춰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조금씩 수거용기 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재활에 집중하며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옆구리 쪽에 꽂혀 있던 그 관이 피노키오의 코처럼 길어져서 나의 내장 어딘가를 찌르는 느낌이 났다. 처음에는 약간의 불편함 정도였지만 조금씩 그 느낌이 강해졌다. 나는 얼른 호흡재활 기구를 내려놓고는 나를 찌르는 뾰족한 칼의 느낌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통증을 조금씩 인지하자 오히려 그 느낌은 점점 심해졌고 얼마되지 않아 내 호흡을 방해할 정도까지 나를 괴롭혔다.
평소에도 미련할 정도로 스스로의 건강과 정신력과 마음가짐을 과대평가하던 나는, 과의지 코스프레까지 더해져서 의사나 간호사를 부르거나 병실안의 다른 환자분에게 도움을 청하는 상식 대신 스스로 참고 견뎌 이겨내보겠다는 어리석음을 택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숨을 쉬려고 할때마다 나를 찌르는 흉수관은 마치 몸에 고정된 실밥같은게 풀어져 몸 속으로 깊이 들어와 내 살 어딘가에 닿아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전쟁이나 악당들의 큰 칼에 찔리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은 아찔하게 혼미해져갔고 급기야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고, 숨을 쉴때마다 나도 모르게 윽!하는 신음소리가 뱉어져 나왔다. 옆 칸 환자의 보호자분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는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수술이 뭔가 잘못되었구나, 나는 이제 이렇게 숨을 쉬지 못한채 생을 마감하는구나. 아이들에게 인사도 못했는데, 어쩌지? 아내를 괜히 내려보냈나.’라는 나약한 존재로써의 불안이 순식간에 내 머리속을 휘감아 갈때 나를 불렀던 옆칸의 보호자분이 커튼을 걷어 내 상태를 확인했다. 거의 동시에 병실의 다른 환자분들과 그 보호자들이 일제히 내 침대를 주시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직감하고 바로 간호사를 불러 주었고 간호사는 내 상태를 확인한 후 다시 담당 의사와 아내를 불러주었다.
아내는 막 식사를 하려는 순간에 전화를 받고 한술도 뜨지 못한채 급하게 올라왔고, 주치의는 수술이 끝나자마자 수술복을 벗지도 못하고 곧바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곤 수술부위부터 확인했다.
“흉수관의 봉합상태는 문제가 없어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할 수 있나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강한 의지로 하루하루 재활을 하며 빨리 나아서 일상으로 가겠다던 계획도, 그때는 좀 더 나답게 살겠다던 다짐도, 남은 인생에 대한 희망도, 심지어 가족과 주변의 지인들까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지 않았다라기 보다는 그런것들을 인식할만한 여유가 전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도저히 숨을 쉴수 없을 만큼 호흡할 때마다 뜨끔뜨금 나를 찌르는 아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고통스러운 상황과 이렇게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나를 극도의 공포로 밀어 넣었다.
‘살려고 수술까지 해놓고 그 수술때문에 이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미칠 때쯤 수술부위를 확인한 의사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젖먹던 힘을 짜내 의사에게 구걸하듯 애원했다.
“수…숨을 쉴수가 없어요. 이 관 끝이 저를 찔러서 호흡을 못하겠어요. 저 정말 죽을 것 같아요. 선생님 제발 이 관을 제 몸에서 빼주세요.”
의사는 수술부위의 문제가 아니니 안심하라고 했다. 수술하고 나서 아주가끔 이런 증상을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수면유도 기능이 있는 강력한 진통제 주사를 줄테니 조금 자고 나면 괜찮을 것이라고도 했다. 걱정말고 자신을 믿으라 했다.
나는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수 없었지만 그 순간 그 한마디 말은 나를 정말 크게 안심시켰다. 아마도 ‘아! 다행이다.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최소한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주치의의 처방에 따라 의료용 마약성 진통제를 맞자 통증이 조금씩 사그러들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떳을때는 주치의 선생님의 호언장담처럼 언제 아팠냐는 듯이 괜찮아졌다.
아내는 내가 잠들기 전까지 의사의 옆에서 줄곧 놀라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공포에 질려서 사색을 하는 경우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는 내내 이마를 닦아주었고 다시 괜찮아진 나를 보며 정말 다행이라고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가장 공포스러웠던 하루가 지나갔다.
내가 다시 괜찮아지자 주변에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이 “아프면 말을 해야지! 살라고 병원에 와서 왜 혼자 죽어가냐“라고 내 마음속을 꽤뚫는 듯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하도 ‘윽윽’ 소리를 지르자, 처음에는 다들 ‘수술한지 몇 일이나 됐다고 무슨 재활운동을 저렇게 열심히 하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호기를 부리지 않는다. 조금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조금만 슬프면 슬프다고 말한다.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인간이 또 얼마나 그러한지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참지말자. 아프면 아프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외치자. 좋은면 좋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전하자.
우리는 우리의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 괜한 호기보다는 솔직한 표현이 모든면에서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이 고통과 바꾸어 깨닫는다.
퇴원하고 몇 일이 지났을 때, 아내는 나를 동네에서 유명한 일식집으로 데려가 함께 날치알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알고보니 아내는 그날 식당에서 점심메뉴로 날치알밥을 시켰다고 한다. 병원의 전화를 받고 사장님께 잠시 올라갔다 와서 다시 먹겠다고 하고선 결국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나니 괜히 아무것도 아닌 그 메뉴를 꼭 한번은 다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야 자신과 내가 다시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한거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아내는 나보다 훨씬 솔직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옆에 서서 내 나약한 투정을 다 들어주는 아내가 있음에 감사한다.
강한척 하는 대신 나약한 존재를 인정하고 건강하게 보내온 일상이 너무나 소중한 행복임에 감사하며 살기로 한다.
이 생각이 무뎌질때면 나는 아내와 또 날치알밥을 먹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