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해~ 도봉산에 오르다.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세월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에 대한 다짐도 할겸, 2009년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충족시킬 겸해서
오늘 하루는 나를 위한 휴가를 내었다. (아마 회사 옮기고 쉬기 위한 휴가는 처음일 듯 싶다.)
새해 벽두의 휴가를 올곶이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어서 오늘은 늦잠대신 등산을 선택했다.
특별히 어떤 산을 올라야겠다고 선택한 것은 아니라서 청계산과 관악산을 염두에 두었다가
지하철로 한번에 갈 수 있는 도봉산으로 코스를 바꾸었다.
오후 1시였지만 산을 오르려고 신호등을 건너는 중년의 등산객도 꽤나 있었다.
아침에 쌀쌀하던 날씨도 제법 플리고…
나 혼자 늦은 등반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사라지지 정상까지 도전해 보리라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그 즈음 오른쪽 멀리서 도봉산 정상쯤 되는 큰 바위봉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도봉산 주차장이었는데, 역에서 내려 여기까지 오니 2년전 전 직장에서 워크샵 왔던 풍경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그 길지 않은 세월동안 나에게도 주변에도 참 많은 것이 바뀌었었지….
도봉산에 온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실제 산은 올라가본 적이 없을 뿐더러, 여기까지 와본것도 겨우두번…
산 입새에 있을 등산안내지도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까 출발전에 급하게 인터넷으로 알아본 등산코스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한참을 들여다보며 코스를 완성하고 자운봉까지 올라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여느 등산로처럼 입구에는 식당과 등산용품 가게로 가득했다. 조금 더 운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산을 지날 때 마다 아쉬운 2%이다.
3~4시간 코스라고 하는데 거리를 봐서는 더 빨리 갔다올 수 있을 듯 싶었다.
큰 산을 혼자 올라본게 언제였던가…
오른쪽으로 도봉서원이 보이고, 맞은 편 계곡은 얼음이 제법 얼어 겨울이란 계절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겨울인데 겨울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구나. 최근에는 보드행차도 줄였으니 더더욱 그러하다. 출, 퇴근길에 잠시 맞이하는 바람이 겨울의 전부이니 겨울을 느껴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잠시 후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지구 비석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도봉산을 검색할 때 가끔 나왔던 돌덩어리…
유명한 뭔가를 직접본다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다. 비록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돌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여행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겠지
중턱을 넘어서자 경사가 조금씩 급해지고..웬 바위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힘도 들고 땀도 난다.
중간에 쉬어 점퍼를 벗어 가방에 넣고, 귤을 하나 꺼내 먹었다.
꿀맛이다. 그래, 이맛이다.
힘을 내었다. 천축사 방향을 갈려고 생각했는데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방향감각이랑 공간감각은 뛰어나다고 자부하지만, 초행길에 비슷한 산길을 혼자서 찾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돌산을 한참 오르자 갈림길이 나왔다.
예정된 경로를 놓쳤으니 이젠 목적지 이정표를 보고 가는 수 밖에…
포대정상 vs 석굴암&자운봉
석굴암쪽으로 방향을 잡고 돌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허벅지가 힘들어하는 느낌이 온몸에 전달되고
무릎도 쉬자고 한다. 날씨가 제법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갈림길에서 잠시 쉬었다 와서 인지 산속으로 들어와서인지 오히려 쌀쌀해진 느낌이었다.
부실체력~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헥헥대는 자신을 돌아보며 무한도전 아버지 박명수가 오버랩되었다.
2009년에는 체력을 키워야겠다.
아무래도 골프는 체력운동은 아닌 듯 싶다는 생각도 들고.. 남자는 하체! 라는 후배녀석의 농담같은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계단을 오르다 지칠때쯤 잠시 쉬기로 했다. 숨이 턱까지 차고 빨리진 심장박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자라서 조금은 두려웠고 체력이 부족할 때 다리라도 접지르면 안 온만 못하다는 나약한 (조심스런 리스크관리라고 이야기 해두자) 생각이 들기도 하고…
힘을 내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뿐 이내 한계에 달한 내 자신을 느껴야 했다.
내려갈까? 이쯤에서….날도 추워지고 산에는 해도 짧다는데…
혼자여서 더 나약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며 온전히 나 만의 시간을 할애하기로 한 하루지 않은가? 이대로 돌아가는 건 정말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 일이기도 했다.
잠시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가뿐 숨을 골랐다.
한 템포 쉬면 되지 뭐… 세상 뭐 있어…
핸드폰을 열어 시계를 봤더니 1시 58분!
이런… 58분만에 여기까지? 힘든게 이유가 있었던가 보다. 오버페이스였나? 아무튼 용기가 났지만 종아리와 허벅지까지는 전달되지 못했나 보다.
작전을 바꾸었다.
천천히 한걸음씩 동일한 패턴으로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워드프로세스 자판을 외우며 타자를 칠때처럼… (다다닥,,,다다닥,,,이 아니라 탁,탁,탁,탁,탁,탁 으로 치는게 더 빠르다는 것쯤은 한글타자 좀 친다하는 사람들은 다 알수 있을 것이다.)
한결 편해졌다. 속도는 늦춰졌지만, 이런 패턴이라면 정상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많이 오기도 했고…
그렇게 한발한발 걷다보니 도봉산이 내게 말을 건넨다.
정상은 한다름에 뛰어올라 가는 자의 것이 아니라 천천히 하지만 늘 한결같이 꾸준히 가는 자에게 허락된 곳이라고…
조금 쉬어가더라도 목표만 분명하고 그길을 꾸준히 걸어간다면 너에게도 정상을 허락하겠노라고..
가슴뭉클함이 느껴졌다.
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나보다.
너무나 당연한 것에 왠 오버…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힘들게 산의 7부 능선을 오르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벅찬 감동이었다.
이 감동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가방을 열어 지하철에서 보던 책을 꺼내 빈 페이지에 지금 이 느낌을 잠시 메모했다.
낫설은 이런 행동은 2009년을 맞이하는 나의 각오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자 자운봉 가는 마지막 쉽터에 올랐다.
물을 한모금 마시고, 귤 한조각과 비스켓 하나를 꺼내 씹고 정상을 향해 다시 힘을 내었다.
북한산 자락의 산 정상은 어디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비봉도 그랬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정상에는 가파른 돌산에 등산객을 위해 쇠로 된 지지봉을 밖아 두었다.
장갑도 없이 산을 나선 나로서는 경사보다 손이 얼어붙을 듯한 짜릿한 느낌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섰다.
기분 좋았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지만, 나는 한걸음씩 걸었고, 이렇게 정상에 섰다.
2009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처럼 걸을 것이다. 숨이차고 심장이 뛸땐 잠시 쉴 것이지만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고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한결같이 걸을 것이다.
도봉산이 내게 한말을 되돌리다 보니 올해가 소의 해이다. 이 기막힌 감흥이란…
오늘 도봉산을 오르기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으며 헛되지 않았으며 정말 행운같은 느낌이다.
올 한해 이 느낌 잊지 않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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