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 한 장교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있는 집일수록 세콤을 불러 지키고, 없는 집일수록 혼자 책임지는 법이다. 한국은 세콤(미군)이 필요하다.” 최근 전작권을 둘러싼 갈등을 묵묵히 바라보는 현역장교들의 속내.
1. “한미연합사는 미군이 한국군을 지배(rule)하고 주도하는 기구가 아니다. 서로 협력하는 쌍방협의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전작권을 ‘환수’한다면서 미군이 한국군을 지배해 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군 교육기관 P대령)
2.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는 자주니, 자존심이니 하는 것이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전시는 특수상황이다. 전쟁이 나면 과연 자존심이 절대적 가치인가? 전쟁의 승패는 곧 생존의 문제다.”(수도권 이남 후방부대 C대령)
3. “일국의 대통령이 당당하게 전작권을 가져오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조기니, 만기니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박는 것은 큰일날 일이다. ‘시기’가 문제가 아니라 ‘여건’을 따져야 한다.” (육군본부 K중령)
“미국이 가진 한반도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우리가 조기 환수할 수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마디가 풍파를 일으켰다. 기다렸다는 듯 미국은 이에 대해 “전작권을 2009년에 가져가라”며 시기까지 못박고 나섰다.
우리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찬반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 문제는 확산 일로다. 입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 이 문제에 대해 잘했느니 못 했느니, 찬성하느니 반대하느니 하며 일가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야말로 ‘만민토론’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단 한 집단, 우리 국방 최전선의 물리력이자 이 문제의 당사자인 군(軍)은 침묵한다. 누구든 그게 마땅하다고 여길 것이다. 이미 잔뜩 정치적 이슈가 된 문제에 대해 군이 어떤 쪽으로든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정치적 행동으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군 자신에 관한 사안이지만, 군의 그런 정치적 행동은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용납될 수도 없다는 원론(原論)을 군은 준수하고 있다.
그러나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자는 평소 허물없이 지내는 영관급 장교들과의 술자리 사담(私談)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기자의 기본 사명일지 모른다. 그들이 마음에 담고 있는 전작권 (조기)인수에 대한 생각은 찬반 입장부터 전작권의 개념.시기.여건, 문제의 전개과정 등 (역시 자기 문제를 꼼꼼하게 바라보는 당사자답게) 다양했다. 그 의견을 반으로 딱 잘라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면 긍정적인 것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군 장교들의 沈默 아닌 沈默
하나는 “전작권을 한국군이 인수하고 단독행사하는 것이 옳다”는 원칙론이다. 즉, “전작권 단독행사는 누가 뭐라든 좋은 일이다. 환수하는 것이 원칙이고 타당하다”거나 “군대가 있으면서도 전작권을 갖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우스운 일 아닌가”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매년 쪼들리던 국방예산의 확대에 대한 기대와 맞물린 긍정론이다. 한 개인, 한 가정이 주변의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다. 하물며 한 국가가 국방 자립을 하려면 얼마의 돈이 들지, 당장 계산도 어려운 천문학적 재정이 요구될 것이다.
우리 군이 그동안 추진해온 중장기 현대화계획과 함께 언필칭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지금(GNP의 2 ̄3%)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획기적 국방예산 증액이 필연적이다. 그런 만큼 군은 앞으로 풍족한(?) 예산 배정을 받으리라는 기대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장교들은 조목조목 전작권 조기 환수(혹은 단독행사)에 대해 부정적 의견과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전작권 환수든 단독행사든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군 교육기관의 P대령은 “이 문제가 제기된 배경과 그 표현부터 애초 잘못됐다”고 말한다.
“전작권 자체를 가져와 단독행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단독행사할 수 있느냐다. 우리가 전작권을 명실공히 단독행사하려면, 또 그 수준까지 가려면 미국의 절대적 협력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거꾸로 말해 전작권은 한.미관계가 아주 좋을 때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어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의 말은 다시 이어진다.
“한.미관계가 삐걱거리는 상황에서 그런 문제가 돌출됐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도 ‘까짓 것 잘 됐다’는 식으로, 좋지 않은 감정으로 떠넘기는 모양새가 됐다. 전작권 이양에 따른 후속 협력이나 지원 같은 것은 전혀 논의되지 않고 ‘가급적 빨리 가져가기나 하라’고 시기 문제에만 매달려 운운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그것은 우리 대통령의 중대한 실책이다.”
P 대령에 의하면 전작권 환수니 단독행사니 하는 표현부터 당장 국론 분열과 갈등을 부를 소지를 안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미국의 반감까지 샀으니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침묵을 깬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한번 열린 그의 입은 좀처럼 닫힐 요량이 아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미국이 전작권을 행사하는 직접적인 주체는 역시 한미연합사(를 통해서)다. 그러나 연합사가 곧 미국의 독자적이고 지배적인 전작권 행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판 그대로 한국과 미국이 유사시 연합해 한국 방위에 대해 상의하고 협력해 작전을 수행하게 하는 기구다. 한국군과 미군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한반도 방위를 이뤄나갈 것인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하고 코퍼레이션(co-operation)하는 통로요 ,채널이다. 미군이 한국군을 지배(rule)하고 주도하는 기구가 아니다.”
비단 P대령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군 대다수는 한국의 최고사령부 격인 합참이 연합사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앞세운다. 양자는 서로 협력하는 쌍방협의체로 봐야 한다는 것. 그런데 노 대통령은 전작권을 ‘환수’한다면서 마치 오랫동안 미군이 한국군을 지배해 왔다는 뉘앙스를 물씬 풍겼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그 결과 대통령은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이제 미군과 한국군 간의 수직관계, 종속관계를 뒤집어야 한다는 식의 대립구도로 현 상황을 표현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 문제라고 토를 단다.
이에 P대령은 “그것은 곧바로 자주 또는 반미(反美)라는 색깔의 이슈로 나라 안팎에 분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그처럼 중대한 문제를 ‘선언’하듯 제기하면서 그 배경도, 표현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결국 세상을 자극하기만 했다. 그게 목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이라고 말을 보탰다.
“진짜 자주국방이 뭐냐고?”
이와 관련해 여러 장교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미국의 전작권 행사는 악(惡)이고, 그것을 우리가 인수해 단독행사하는 것은 선(善)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며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비판했다. 수도권 이남의 후방 부대 C 대령.
“전작권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익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과연 어떤 것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따져야 한다. 결코 자주니 자존심이니 하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전쟁이 나면 과연 자존심이 절대적 가치인가? 전쟁의 승패는 곧 생존의 문제다. 목욕탕에 불이 났는데 남들 보기도 그렇고 하니 옷을 찾아 다 갖춰 입고 대피하자는 식의 생각을 할 새가 있을까? 전시는 그야말로 특수한 상황이다. 자존심보다 국민의 생명과 생존이 우선시되는 상황이다. 전작권 문제는 그러한 전제와 배경에서 신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국방연구기관에 파견된 H 중령은 “내가 틀렸는지 세상이 틀렸는지 모르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답답하다. 나도 대한민국 육군 장교지만 우리가 전작권이든 조약이든 여기(한반도)에 미국과 미군을 딱 붙여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술상 위에 손가락으로 지도까지 그려가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약소국 단계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중국.일본.러시아라는 군사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어디로 이사 갈 수도 없다. 이들 사이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빌려야 하는데, 그것이 곧 미국이다. 미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외교니 국방이니 하는 것이 무슨 개인 간 자존심이나 윤리 도덕의 문제도 아니다.”
H 중령은 “힘과 역학관계의 문제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철저한 산수(算數)”라며 “이쪽을 이용하고 저쪽과 손잡고 하는 것을 자존심이 깎이는 문제라거나 자주국방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할 사안이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중국이 동북공정을 밀어붙이는 것이 공교롭게도 미국과 한국 간 동맹이 약화하고 갈등이 불거진 이후다. 자주국방? 자존심? 오히려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도, 또 각하(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처럼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미국의 힘을 빌려야 한다. 더욱이 북핵이 실제상황이 된 마당에 어떤 선택이 진정 현명하고 실속있는 의미의 자주국방이겠는가.”
밖의 강한 힘을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자주국방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역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S대령도 동감이다.
“순전히 자기 힘으로, 자기 돈으로, 자기 노력으로 국방 하는 것이 과연 자주국방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중소기업이 사는 가장 실속있는 방법은 대기업과 긴밀히 신뢰하는 관계를 맺고 납품.자금지원.기술지도 등 다양한 지원을 받는 것이다. 대기업과의 관계 없이 독자경영, 홀로서기로 폼을 잡을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실로 매우 어렵다. 국방.외교도 그런 것이다. 국방.외교전략을 현실로 파악해야지, 되지도 않고 실속도 없는 자주를 외치는 것은 바보다. 그런 인물은 지금까지 대원군이나 김정일 같은 이들밖에 없다.”
전사(戰史)에 해박한 O대령은 영국의 예를 들어 ‘진정한 자주국방’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무슨 일만 났다 하면 영국은 미국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실제로도 협력한다. 역대 영국의 지도자들은 ‘자존심의 국가’답지 않게 미국에 우호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블레어는 심지어 미국의 개라는 비아냥까지 감수하며 미국의 세계 정책에 편들고 동조했다. 왜 그럴까? 힘이 없어서? 자존심이 없어서? 한마디로 전통적인 국방.외교정책, 곧 실리외교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국방.외교정책에 대한 O대령의 말 역시 의미심장하다.
“영국은 자신이 유럽 대륙의 패권을 잡겠다는 정책을 취한 적이 없다. 다만 다른 국가의 패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국방.외교전략을 원칙으로 삼아 왔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서유럽 국가는 물론 러시아(옛소련)의 패권도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했을까? 영국이 군사력에만 총력을 기울인다면 그러한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그렇게 하는 대신 미국을 자기 편으로, 맹방으로 묶어두었다.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절대적 외교 방침으로 유지해 왔다. 군사력.경제력.영향력 등 미국의 힘을 유럽에 끌어들여 동맹 이상의 친구 관계를 유지하며 유럽의 균형자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그는 이 같은 긴 설명에 이어 “그것이 실리외교요, 진정한 자주국방이다. 그 덕에 세계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든 영국의 파운드화(貨)는 안정세를 유지해 오기도 했다”고 말하고 “자주국방.실리외교.균형자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본이 곧 영국”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소위 “자주국방이란…”하면서 이렇게 씩 웃으며 잘라 말했다.
“잘 되는 집, 있는 집일수록 세콤(외주 경비업체)을 불러 지키고, 없는 집일수록 자기가 몽둥이 들고 밤잠 못 자고 낑낑대면서 지키는 법이다. 한국은 지금 잃을 것이 많은 ‘있는 집’이다. 외부의 힘과 연대해 지켜야 한다.”
“한국은 세콤 불러 지켜야 할, 잃을 것이 많은 집”
기자가 만난 군 현역장교들은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 자주국방을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우매한 짓”이라는 말과 함께 “냉정하게 우리 현실을 보면 그것은 요원한 희망사항”이라는 의견을 단호하게 언급했다. 앞의 P대령.
“전작권 인수와 단독행사는 한.미관계가 좋을 때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현실적인 것과 관련돼 있다. 한.미관계가 좋고 서로 신뢰가 두터워야 미국이 우리에게 좋은 장비를 넘겨준다. 무기.장비는 곧 칼이다. 잘 드는 칼, 좋은 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려면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돈이 있다고 덜컥 사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글호크(원격공중감시기)’를 사오려 했지만 미국이 국제규약 어쩌고 하며 이유를 달아 당장 거절했다. 일본에는 우호적이면서 왜 그랬겠는가? 특히 자주를 목소리 높여 외치는 나라에 미국이 첨단 무기. 장비를 넘겨줄 리 만무다.”
그의 말은 점점 강도를 더한다.
“나를 찌를 것 같은 사람한테 돈을 준다고 그런 칼을 넘겨줄 리 없다. 미국 말고 다른 곳에서도 사올 수 있지만, 우리가 전작권을 단독행사하면서 북한 나아가 러시아.중국.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첨단 무기나 장비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런 수준의 국방력을 갖춘 나라는 지금 없다. 과거 보스니아.코소보 사태 같은 것은 유럽이 미국에 매료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유럽은 그때 미국의 힘, 미국의 첨단 무기, 미국의 가공할 군사기술을 실감했다. 그런 차가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육군본부의 K대령은 우리의 정보 획득 및 분석 능력을 한계로 지적했다.
“단독행사를 선언한다고 해도 그에 따른 후속조치는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장비문제도 그렇지만 정보 또한 그렇다. 현재 우리 군의 정보 능력이 취약한 것은 아니지만 미군의 협력과 지원 없이는 홀로 서기 어렵다. 당장 인공위성과 첨단 공중 장비 등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 전략정보는 사실 100%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관측장비와 여러 경로를 통해 얻어내는 전술정보 또한 절반 이상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거대 장비와 고도의 정보력이 요구되는 해군과 공군 또한 미국의 전력에 크게 의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몇 년 안에 어떻게 진정한 의미의 자주국방이 가능하겠는가? 정치적 결단은 내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뒷받침해야 할 군사작업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인수 시기는 못 박는 것 아니고 최후에 결정할 문제”
전작권 인수(혹은 단독행사)와 관련해 이런저런 견해를 피력했던 장교들은 그 ‘시기’에 관해서는 다들 펄쩍펄쩍 뛰듯 했다. 그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전하면 이렇다.
“일국의 대통령이 당당하게 전작권을 가져오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조기니 만기니, 시기를 말하는 것은 큰일날 일이다. 시기는 문제가 아니다. ‘시기’보다 ‘여건’을 따져야 한다. 여건을 따지지 않고 어떻게 2009년이니 2012년이니 하면서 시기를 말할 수 있나? 전작권 문제에서 시기는 가장 나중에 따지고 결정해야 할 의제다.”(육본 K중령)
“조기 환수라는 표현을 미국은 2009년으로 못박고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의 주장처럼 2009년에 전작권 인수가 이뤄지고 단독행사하려면 당장 지금부터 우리 군은 다른 일을 제쳐놓고 전작권 행사를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가능한 말인가?”(후방부대의 작전참모인 다른 K중령)
“전작권 인수와 단독행사라는 것은 정치적 결정 단계에서 군사적 실무 단계까지 전 과정이 움직여 줘야 하는 중대하고도 광범위한 작업이다. 물론 우리 군은 언제든 전작권을 인수해 단독행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그림을 그리고 한.미 간 그런 그림에 합의하는 작업만 해도 2009년까지는 빠듯하다. 더욱이 사소한 부분까지 완비하려면 그 후에도 대단히 긴 시간과 노력, 비용이 필요하다. 2009년이니 2012년이니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라면 어떻게든 해야겠지만 시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국방 실무 담당자인 우리는 정말 죽을 맛이다.”(한미연합사 K대령)
군 교육기관 교수 출신 L대령은 전략적인 시각과 전작권 인수 시기 문제를 연관지어 이렇게 말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군의 전략적 기동성을 강조했다. 즉, 미군을 특정지역에 묶어두지 않고 집중과 분산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전략으로 바꾸었다. 그런 점에서 주한미군은 지금의 미국 입장에서는 큰 손해다. 1950년대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한미군을 한국에 묶어두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자유롭게 이동시키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조약 내용에 따라 한국 측이 반대하면 그러한 이동은 어렵다. 그것이 미국의 고민이었다. 그러던 터에 우리가 먼저 조기에 전작권을 단독행사하겠다, 2012년이면 가능하다 운운하자 이것 잘 됐다면서 그것을 앞당겨 2009년에 가져가라고 나오는 것이다. 2012년이든 그 전이든 시기를 못박아 거론하는 것은 우리가 실리를 취할 수 있는 부분을 줄어들게만 할 뿐이다.”
앞서의 한미연합사 K대령은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미국보다 분명히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은 우리가 전작권을 단독행사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여유기간을 의미한다”고 정리했다.
“고도의 국가전략을 여론몰이로 해서야…”
설명과 분석, 지적과 비판 수준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던 장교들이 유난히 분개한 대목은 전작권 문제가 정쟁과 여론 재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이었다.
“지금 전작권 문제는 그야말로 뜬금없이 나온 말이다. 전작권을 한국군이 갖는다는 원칙은 이미 이 정권 들어 한.미 간에 양해되고 합의된 사안이다. 그 시기와 여건을 놓고 한.미 간에 줄다리기가 이어져 오던 터다. 양국 간 정치.외교.국방 엘리트들 간에 전문적으로 논의돼야 할 고도의 전략사항인 것이다. 그런 문제를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확 터뜨려 버렸다. 더욱이 전작권이 마치 한.미 간 어떤 예속관계의 상징인 양 몰아가고 조기 환수한다고 시기까지 천명했다. 그 결과 우리 입장에서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초래됐다. 미국과의 협상이니 줄다리기 하는 여지가 극히 좁아졌다.”(O대령)
그러면서 그는 군사 측면뿐 아니라 경제 측면에서도 국익을 크게 해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경제가 압축.고속성장을 한 이면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연합사라는 전쟁 억제력과 방위력이 있었다. 전작권 단독행사는 곧 그동안 경제에 쏟던 힘의 상당부분을 군사 쪽으로 돌려야 함을 의미한다. 또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김정일 정권이 미국을 상대로는 전면전을 벌이지 못하리라는 전제 하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북한이 핵실험을 한 상황에서 한국은 ‘투기’ 대상은 돼도 ‘투자’ 측면에서는 기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디를 둘러봐도 전작권 문제의 돌출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대통령이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문제를 제기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자연스레 드는 것이다.”
이니셜조차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육군 대령은 “정치적 포퓰리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말 용서받지 못할 처사”라며 분개했다.
“전작권은 군사전략을 넘어 국가전략에 관한 사안이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책상머리에 앉아 정치적인 수로 그려내고, 급기야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와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거기에 세상과 국민이 놀아나는 형국이다. 전작권의 독자행사, 이를 통한 자주국방, 다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럴듯하게 포장해 여론에 붙이면 일반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우선은 동조할 것 아닌가. 실리와 실속 그리고 냉엄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구호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 곧 지금의 ‘전작권 포퓰리즘’이다. 마치 국민투표하듯 물어보고 여론몰이해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일정한 정치적 이익을 챙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直言하는 사람 사라진 ‘코드 군대’
“이런 현실이나 속사정을 잘 아는 군에서 대통령에게 직언(直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장교들은 예상 밖의 정치적 식견을 보여주었다.
“군에서는 더 이상 위에 대고 소신껏 말할 사람이 없다. 현실을 정확하게 입력(入力)해 줄 사람도 없다. 햇볕정책 기조가 외교와 국방정책의 대원칙이 된 이후 군 인사도 그런 코드에 맞춰 진행돼 왔다. 군은 아웃소싱이 없는 집단이어서 인사가 정말 중요한데, 지난 10년은 한가지 코드에 맞춰져 인사가 이뤄졌다. 정권과 다른 견해를 가진 군인은 위로 오르기 어려웠다. 그러니 그동안 군에 어떤 사람들로 채워졌겠는가.”(대령 진급에서 탈락한 C중령)
“전작권 문제는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에 영향받는다.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몸소 겪고 고민하며 성장한 인물이 국정을 맡을 때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 그런 지도자가 몇이나 되는가. 선진국에서는 기초단체에서 광역단체로, 또 정당을 통해 검증되고 양성된 인물이 국가 지도자가 된다. 그런 만큼 국방.외교문제도 철저히 국익을 따져 결단하고 행동한다. 우리는 어떤가. 예정된 인물, 길러진 인물이 아니라 주로 ‘다크호스’가 정권을 잡는다. 인간세상에서 길러진 검증된 인물이 아니라 소위 ‘하늘이 낸 사람’이 덜컥 지도자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런 정권은 십중팔구 세상 일을 O 또는 X라는 흑백논리로 재단하고 판단한다. 세상은 그렇지 않은 일이 훨씬 더 많은데도 말이다. 전작권 문제도 그렇게 전락한 느낌이다.”
기자가 만난 H중령의 한숨 섞인 토로다. 가뜩이나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우리 군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터라 그 한숨이 더 깊어 보였다. <월간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