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맞이 – 트리 만들기
이제 껏 살면서 내손으로 처음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보았다.
일요일이면 맨날 빈둥빈둥 EPL보면서 허송세월로 보내기가 아쉽기도 했지만,
얼마전부터 트리 타령하던 아내에게, 요 몇일 미안한 것도 있고 해서
엉겹결에 주문했던 트리 세트가 -마침 아내가 출근한 오늘 아침에- 도착했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박스를 뜯어 받침을 만들고 2단 트리를 연결한 후,
뭉쳐있던 소나무 가지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풀어헤쳤다.
꼭대기에 별을 달고 주변에 리본과 전구를 달고,
꽃과 양말에 산타까지 연결하고 에어컨 옆에
밀어넣었다.
전원을 연결하니 제법 그럴싸한 트리가 탄생했다.
어릴적 그 동심의 세상에서도
그 누구 하나 만들어주지 않았던 트리…
사실, 기대 자체를 안했지.
집에서 트리를 만들어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생각조차도 못하고 살았던 내가,
혼자 앉아 나도 모르게 캐롤을 흥얼거리며 트리 삼매경에 빠져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참으로 隔世之感이다.^^
거실조명을 죽이고 트리만 밝힌 체, 아내의 퇴근을 기다렸다.
역시…
– 예상대로 엄청 놀라더이다.
– 어떻게 트리 만들 생각을 했냐고 묻길래,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더이다.
– 트리 만드는 중에 세탁기 한번 돌렸는데, 널린 빨래보며 더 깜짝 놀라더이다.
– 그리곤 참으로 오랜만에 그녀가 웃더이다.
– 난, 그 웃음이 그냥 미안하더이다.
사는 건 별거 아닌데, 행복도 별거 아닌데, 난 왜 이토록 가족들에게만 모진 사람이었는지…
크리스마스를 맞아히는 트리 앞에서 조금만 더 서울 남자로 살아보기를 다짐해 본다.